위스키 라벨 읽기. 위스키 고수인척 하기

바에서 위스키를 주문하면 종종 있는 일이다. 바텐더가 내가 마시는 위스키 병을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아주시는 일 말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바에 동행한 친구가 의아해했다. “이렇게 병을 놔주는 게 원래 이런 건가요?”

사실 나도 그동안은 그저 당연한 일이려니 생각했으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건 바텐더들의 작은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위스키를 그저 마시기만 하는 것보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라벨을 읽어보는 것. 내가 마시는 위스키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알아내는 것 역시 위스키를 즐기는 또 하나의 묘미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다.

물론 위스키를 처음 접하거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라벨을 읽을 때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로 된 와인 라벨과 달리,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위스키 라벨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 한국인 입장에서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게다가 위스키 라벨은 와인에 비해 매우 간단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아, 위스키를 구매하거나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용어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위스키의 장점 중 하나는 고급 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용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즉, 조금만 알아도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위스키 라벨의 주요 용어

위스키 라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요한 용어들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영어를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용어의 의미를 몰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용어들은 위스키의 특성과 품질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실제로 위스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알고 있으면 유용하다. 사실 이 정도만 알아도 위스키 고수인 척 하는데는 충분하다. 그럼 주요 용어들을 하나씩 알아보자.

싱글 배럴 (Single Barrel) 혹은 싱글 캐스크 (Single Cask)

‘싱글 배럴’ 혹은 ‘싱글 캐스크’ 라는것은 , 그 위스키는 단 하나의 배럴(캐스크)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배럴과 캐스크의 차이는 없고 미국에서는 배럴이라는 단어를, 스코틀랜드 에서는 캐스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보통 53갤런(약 200리터) 크기의 화이트 오크 배럴을 사용하지만, 크기에 제한은 없다.

싱글 배럴 위스키는 각 배럴마다 맛과 향의 차이가 있다는것이 특징이다. 아무리 같은 재료, 환경에서 숙성했더라도 똑같은 나무를 사용한것은 아니니 당연한 맛도 조금은 다르지 않겠는가? 같은 브랜드의 위스키라도 맛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특징 때문에 싱글배럴은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맛을 볼때도 이런점을 생각해서 맛을 보면 재미있다. 실제로 맛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싱글 몰트 위스키 (Single Malt Whisky)

‘싱글 몰트’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를 의미한다. EU 규정에 따르면, 싱글몰트는 반드시 포트스틸(pot still)에서 증류되어야 하며, 사용되는 곡물은 보리여야 한다.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의 경우, 최소 3년 이상 숙성되어야 합법적인 위스키가 될 수 있다.

싱글몰트 관련해서 조금은 잘못 알려져 있거나 착각할수 있는점은, 싱글 몰트라고 해서 반드시 한 배럴(케스크)의 위스키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 배럴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싱글배럴 (혹은 싱글 캐스크) 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쓴다. 여러 배럴, 여러 연도의 위스키를 블렌딩 해도 싱글몰트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싱글몰트의 핵심은 모두 같은 증류소에서 생산된 것으로만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결국 각 증류소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위스키 이기 때문에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은것도 싱글몰트 위스키다.

블렌디드 위스키 (Blended Malt Whisky)

블렌디드는 일반 블렌디드 그리고 블렌디드 몰트로 구분된다.

일반 블렌디드: 몰트와 그레인을 섞은경우

블렌디드 몰트: 여러 증류소의 싱글몰트만 섞은 경우

과거에는 ‘바티드 몰트(Vatted Malt)’라고 불렸던 이 용어는 두 개 이상의 증류소에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를 블렌딩한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오래된 바틀에는 바티드 몰트라고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 (아마 비쌀것이다 ㅎㅎ) 블렌디드 몰트의 특징은 맛이 매우 동일하고 부드러움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블렌디드의 역사를 보면 싱글몰트가 너무 강한 개성으로 인해 인기가 없을때 대중적으로 맛있을 맛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증류소의 위스키를 섞은것이 시작이다.

블렌디드 몰트는 각 증류소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필요한 위스키 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싱글몰트보다 더 고급지고 맛있다고도 생각되지만, 최근 유행에는 블렌디드보다는 싱글몰트가 선호된다. 유행은 돌고 도는것이라는데 그건 위스키 업계도 마찬가지다. 많이들 아는 발렌타인, 조니워커, 등이 블렌디드 위스키다.

캐스크 스트렝스 (Cask Strength)

‘캐스크 스트렝스’라는 표시가 있다면, 그 위스키는 숙성 후 물을 더하지 않고 그대로 병에 담았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스카치 위스키는 40%로 통일되어 있는데, 이건 물을 추가해서40% 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가장 맛있는 알콜 도수가 40% 라는 말도 있지만, 법적으로 40%가 넘어야 위스키로 쳐주기 때문에 생산성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경우라고 보는 것이 맞다. 캐스크 스트렝스는 물을 추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알코올 도수가 46% 이상으로 높은 편이고 원액 그대로의 강렬하고 풍부한 맛을 즐기고 싶은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당연하지만 가격도 일반 위스키보다 높다.

같은 뜻으로는 배럴 스크렝스(미국) 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만의 카발란은 ‘솔리스트’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NCF (Non-Chill Filtered, 비냉각여과)

냉각여과는 위스키의 외관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산업적 과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맛과 질감을 내는 성분들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 맛 그대로를 유지했다는 마케팅 용어로서 ‘NCF’ 또는 ‘비냉각여과’ 표시를 할때가 많다. NCF 위스키의 맛을 보면 좀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각 브랜드별로 NCF 제품군들이 있다. 아드벡 , 아란 그리고 글렌알라키 등등 많다.

숙성 연수 (Age Statement)

이건 어렵지 않다. 12년이 적혀있다면 ‘최소’한 해당 연도만큼 숙성된 위스키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최소’라고 적은대로, 12년이라 적혀있어도 12년 이상의 원액이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는 NAS(No Age Statement, 숙성 연수 없음) 위스키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으니 숙성연수가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고, 숙성연수가 높다고 무조건 맛있는 위스키는 아니다.

스트레이트 (Straight)

이 용어는 미국 위스키에만 사용된다. 즉 이 용어가 적혀있다면 버번이나 혹은 라이 위스키일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이트’ 위스키는 최소 2년 이상 새로운 오크통에서 숙성된 것을 의미한다. 단, 스트레이트 콘 위스키의 경우 사용된 숯 탄 오크통이나 새로운 숯 탄 오크통에서 숙성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스트레이트 위스키(예: 버번, 라이, 윗, 콘)를 블렌딩할 수 있지만, 모두 같은 주에서 생산되어야 하다.

본디드 또는 병입본드 (Bonded or Bottled-in-Bond)

이 용어도 미국 위스키에서만 사용되는 특별한 명칭이다. ‘본디드’ 위스키는 1897년에 제정된 병입본드법(Bottled-in-Bond Act)에 따라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 법은 원래 위스키의 품질을 보증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본디드’ 위스키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반드시 한 증류소에서, 한 명의 증류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 -한 번의 증류 시즌(1월~6,7) 동안에만 생산되어야 한다.
  • -최소 4년 이상 정부의 감독 하에 있는 보세창고에서 숙성되어야 한다.
  • -병입 시 알코올 도수가 정확히 50% ABV(100 프루프)여야 한다.
  • -물 이외의 어떤 첨가물도 넣을 수 없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 때문에 ‘본디드’ 위스키는 높은 품질과 진정성을 보장된다고들 한다.(당연히 아닌 경우도..) 또한 이 조건들로 인해 일반 위스키에 비해 생산량이 적어 희소성이 높은 편이다.

피니쉬 (Finish)

피니쉬란 위스키를 처음 숙성시킨 오크통이 아닌 다른 종류의 통에서 추가로 숙성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위스키에 새로운 풍미와 복잡성을 더할 수 있다. 주로 와인이나 주정강화 와인을 담았던 통을 사용하는데, 가장 흔한 것은 쉐리 피니쉬다. 그 외에도 포트, 마데이라, 럼, 버번 등 다양한 피니쉬가 있다.

예를 들어, ‘쉐리 피니쉬’라고 적혀있다면 이 위스키는 처음에는 일반적인 오크통에서 숙성되다가 마지막에 쉐리 와인을 담았던 통에서 추가로 숙성되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위스키는 쉐리 와인의 의 달콤하고 과일향이 나는 특성을 얻게 된다.

피니쉬의 기간은 다양한데,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다양하다. 라벨에 ‘피니쉬(Finish)’나 ‘더블 우드(Double Wood)’, ‘트리플 우드(Triple Wood)’ 등의 표현이 있다면 이런 추가 숙성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피니싱은 위스키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같은 증류소의 제품이라도 피니시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기때문이다. 글렌피딕 15년 솔레라 리저브, 발베니 더블우드, 라프로익 PX 캐스크 등이 전부 다 피니쉬의 좋은 예다.


의미가 적거나 없는 용어

위스키 세계에는 실제로 큰 의미가 없지만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이 있다. 이런 용어들은 주로 마케팅 목적으로 사용되며, 법적 정의가 없거나 모호한 경우가 많다. 알아두면 좋지만, 위스키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스몰 배치 (Small Batch)

스몰 배치’는 소규모로 생산된 희소성 높은 위스키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다. 하지만 이 ‘소규모’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전혀 없다. 누군가는 2~3개의 배럴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스몰배치이다 라고 주장할수 있지만 대형 증류소의 경우 연간 수만개의 배럴을 생산하기 때문에 2,000개의 배럴도 나름 스몰배치다. 결국 ‘스몰 배치’라는 표현은 각 브랜드가 자의적으로 정의하는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크래프트(Craft) 및 수제(Handmade) 등등

이 용어들은 위스키가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위스키가 어느 정도의 ‘수작업’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 용어들의 의미가 모호하다.대부분의 위스키 생산 과정에는 자동화된 설비와 수작업이 함께 사용된다. 법적인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대형 증류소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도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잘 생각해보면 실제로 100% 수작업으로만 만들어지는 위스키가 세상에 있을까? 글쎄 김창수 위스키 정도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기타 주의 사항

빈티지 연도와 병입 연도

위스키 병에는 종종 연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때 이 연도가 빈티지 연도(증류 연도)인지, 병입 연도인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위스키는 두 연도를 모두 표시하기도 하니 Bottled in 인지 Matured in 인지 해당 연도의 위아래 글자를 유심히 봐보자.

증류 주(州) 표시

모든 주류에는 원산지 국가를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라벨에도 표기가 되어있다. 미국의 경우, 만약 라벨에 표시된 회사 주소의 주와 실제 증류가 이루어진 주가 다르다면, 증류가 이루어진 주가 표시되어 있다.


위스키 용어 활용법

이제 대략적인 위스키 라벨에 나타나는 주요 용어들과 그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 실제로 바에서 위스키를 시키거나 마트에서 구매할때 활용하자.

1.아직 위스키 맛이 다 똑같이 느껴지는 당신

이 수준이라면 너무 복잡한 것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위스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블렌디드 위스키 혹은 싱글몰트 위스키 중에서도 연도 표기가 되어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2.아 이제 좀 맛을 알거 같은데 독특한 경험을 원한다

이정도 수준이라면 좀 더 독특한 맛을 위해 싱글 배럴이나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를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위스키들은 각각의 특징이 더욱 뚜렷하고 강렬한 맛을 제공하는 편이니까. 또한, 위스키 라벨을 볼때 NCF(비냉각여과) 표시가 있는 위스키를 선택하면, 기본적인 위스키보다 위스키 본연의 풍부한 맛과 질을 더 느낄수도 있다.

3.가격대비 품질이 좋은것을 원한다

위스키를 고를 때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위스키를 원한다면. 이때 ‘본디드’ 또는 ‘병입본드’ 표시가 있는 미국 위스키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위스키들은 정부의 엄격한 규제 하에 생산되기 때문에 맛이 보장되는 편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다 그런건 아니다..)

4. 일반적인 위스키보다 풍부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

피니시가 특별한 위스키를 골라보자. 쉐리 피니시가 특별히 인기가 많은데 쉐리 위스키의 복잡하고 풍부한 과일향이 위스키에 입혀지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위스키도 좋다. 스카치 위스키인데 버번 캐스크에 피니쉬를 했다면 그것도 나름 달달한 버번의 맛이 입혀진다.


끝으로…

위스키를 배우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몇 가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오래 숙성된 위스키만이 진정한 위스키지’, ‘NAS는 격이 떨어져’, ‘싱글몰트가 아니면 마실 가치도 없어’, ‘NCF 표시 없는 건 건너뛰자’…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나 위스키 업계의 영리한 마케팅이 이런 편견들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주니 말이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이런 편견들이 우리의 경험을 얼마나 제한하고 있을까? NAS라고 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위스키의 생동감 넘치는 매력이 있다. 블렌디드 위스키 중에도 수많은 걸작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NCF 처리를 하지 않은 위스키도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고, 여러 캐스크를 블렌딩한 위스키는 때로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라벨의 정보들은 그저 우리를 안내하는 이정표일 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누군가는 아일라의 강렬한 피트 향에 매료되고, 또 다른 이는 하이랜드의 부드러운 달콤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기분, 날씨,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위스키가 끌릴 수 있다.

위스키를 즐기는 데는 정답이 없다. 그저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행일 뿐이다. 어떤 날은 오랫동안 갈망하던 고가의 위스키를 음미하고 싶을 수 있고, 또 어떤 날은 친숙한 일상의 위스키가 그리울 수 있다. 이 모든 순간이 위스키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위스키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 그러니 라벨이라는 틀에 갇히지 말자. 위스키를 즐기는 데는 어떤 규칙도, 어떤 제약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