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면세점에 가면 꼭 사와야 하는 위스키들이 있다. 각 국가와 지역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면세점에는 유명한 위스키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에 가면 면세점에서 사야 하는 위스키가 세 가지가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도 그런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아벨라워 아브나흐.
두 번째는 메이커스마크 캐스크 스트렝스.
마지막이 바로 이 글렌모린지 시그넷이다.
최근에는 제주도를 가지 않아서 (너무 비싸진 제주도..) 위스키를 사온 지는 오래되었으나, 그래도 나 역시도 제주도 면세점에서 이 시그넷을 사왔었다. 그리고 이번에 기회가 되어 친구들과 만날떄 가서 함꼐 땃는데 기대가 매우 컸다.
글렌모린지 시그넷은 글렌모린지의 프리미엄 라인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위스키로, 그 가치를 대변하듯 중후한 나무 케이스에 담겨 있다. 처음 구매하면 그 무게에 놀라게 되는데, 우스운 건 위스키 병 자체보다 케이스가 더 무겁다. 주객전도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통상적으로 위스키의 외관이나 포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나도 이 제품의 패키징에서 글렌모린지가 이 제품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었다. 선물용으로 너무나도 잘 어울리게 만들어졌다.

이 시그넷은 다른 위스키와는 다른 점이 있다. 물론 위스키의 기본적인 맛과 향은 비슷하지만, 일단 만드는 과정부터가 다르다. 글렌모린지 시그넷은 맥아를 볶아서 증류를 했다. 커피를 볶듯이 맥아를 구워서 증류를 했는데, 최근에 다른 양조장에서 이런 방식을 도입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시그넷이 나왔을 때는 위스키 양조에서 흔치 않은 방식이었다.
이 녀석은 1차로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한 후, 올로로소 셰리 통으로 옮겨가 추가 숙성을 한다. 버번 통에서는 대략 8년 정도를 보내고, 올로로소 셰리 통에서는 2년 정도를 더 숙성한다고 한다. 통 구경을 참 많이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두 종류의 통을 거치면서 각각의 특징을 흡수하는데, 버번 통에서는 바닐라와 오크의 풍미를, 올로로소 셰리 통에서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의 풍미를 얻는다. 마지막으로는 비냉각여과라는 걸 하는데, 이 과정은 위스키의 풍미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 보통 위스키는 여과 과정에서 차갑게 식혀 불순물을 제거하지만, 시그넷은 이 과정을 건너뛰어 원래의 맛과 향을 그대로 유지한다.
글렌모린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그넷은 이런 독특한 제조 과정 덕분에 모카와 다크 초콜릿 같은 향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볶은 맥아와 각각의 오크통에서의 풍미가 섞여서 묘한 맛을 자랑하는데 한 모금 마시면 부드럽게 들어오면서 작게 커피와 다크 초콜릿 맛이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 풍미는 위스키라는 고급 술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고, 초콜릿이나 커피 같은 걸로 안주를 해먹어도 찰떡인 느낌이다.
병을 열어 잔에 따르면 짙은 호박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 깊은 색은 볶은 맥아와 셰리 캐스크 숙성의 영향이라고 한다. 46%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이 위스키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목을 넘어간다.
최종평
맛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이, 30만 원 정도 하는 값을 충분히 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워낙 마케팅과 여러 리뷰들이 초콜릿 향과 커피 향이 쏟아진다는 듯한 표현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초콜릿 향과 커피 향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강하게 나는 것이 아닌 잔향처럼 살짝 스쳐 지나가는 편이다. 그럼에도 다른 위스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향과 맛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생각보다 매우 부드럽게 잘 넘어가고, 특유의 다크초콜릿, 커피 향이 없더라도 충분히 맛있는 위스키다. 데일리로 두고두고 마시고 싶을 정도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이 위스키를 즐길 때는 다크 초콜릿이나 에스프레소 커피, 말린 과일 등을 곁들이면 더욱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을것 같다. 한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