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위스키 쇼핑이다.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눈에 띈 것은 2022년에 설립된 신생 증류소 히노마루의 폭넓은 라인업이었다. 빅카메라 매장의 위스키 코너에서 마주한 히노마루의 다양한 제품들은 신생 증류소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찬찬히 살펴보니 이 증류소의 특징은 캐스크 운용 방식이다. 매우 독창적이고 다양한 조합을 실험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사쿠라 에디션의 경우에는 버번 캐스크를 기반으로 벚나무(사쿠라), 체리 브랜디, 셰리, 와인 캐스크에 번갈아가며 숙성했는데, 벚나무 캐스크는 무슨 맛일지 궁금한 동시에 “이게 밸런스가 잡히긴 하나? 도대체 몇 년씩 숙성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연 이 많은 캐스크들의 특징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모든 병을 하나씩 구매해서 비교하며 맛을 보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그럴 순 없었다. 그렇게 여러 제품 중 선택한 것은 시그니처 1823. 기본이 되는 시그니처 제품이니 가장 안정적인 맛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렇게 돌아와서 친구와 함께 마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실망감이 큰 위스키다. 물론 향도 좋고 맛도 어느 정도 이 가격대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맛이지만, 그 ‘일본 위스키’라는 타이틀 때문에 한참 올라가 있는 기준점에는 조금은 모자란 맛이다.
꽃향기는 매우 좋고 바닐라 향과 달달함도 매우 괜찮다. 일본 위스키 특유의 장맛도 조금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확연하게 느껴지는 적은 풍미가 더 실망감을 주는데, 아무래도 버번, 럼, 셰리 캐스크 세 가지에 숙성한 것으로 기대했던 맛은 좀 더 다양하고 깊은 맛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보통 트리플 캐스크는 다양한 맛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세개의 맛을 한번이 느끼는 것이랄까? 하지만 이 위스키는 숙성 연도가 적어서 그런지 내 입맛에는 조금은 밸런스가 깨진 듯한 느낌이다. 버번 캐스크의 느낌은 확연하지만 셰리는 잘 모르겠고 럼 캐스크 맛도 약하다. 뭔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특징적인 맛이 없다고 할까? ‘아, 그냥 위스키구나’ 라는 느낌이다. 마치 처음 위스키를 마셨을 때 느껴졌던 그런 맛.
같이 마신 친구도 조금은 실망한 표정. 물론 이 가격대의 위스키로만 본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일본 위스키’라는 프리미엄이 만들어낸 높은 기대치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신생 증류소의 과감한 시도는 높이 살 만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최종평
최근 일본 위스키의 급격한 성장세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야마자키나 히비키와 같은 전통 있는 브랜드들의 글로벌 성공이 새로운 증류소들의 시장 진입을 이끌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분명 일본 위스키 시장의 다양성과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신호다. 하지만 히노마루 시그니처 1823은 이런 급격한 성장의 그림자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가격대비 성능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위스키지만, 같은 가격대의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크다. 특히 스카치 위스키의 12년산 제품들이 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와 충분한 숙성기간이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맛을 이런 신생 증류소는 아직 따라가지 못한다. 실험정신은 높이 살 만하지만 완성도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