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숙성. 위스키 숙성은 왜하는 걸까?

주류 시장은 마케팅이 매우 활발한 분야 중 하나다. 왜 그런가 하면, 실제로 제품과 브랜드 간의 제품 차이가 약하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소비자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이와 비슷한 시장은 의류, 신발, 탄산음료 시장이 있는데 이 시장의 특징은 분명 매니아나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별 차이가 없는 제품들을 만드는 곳이다. 나이키의 러닝신발과 아디다스의 러닝신발의 차이를 당신은 말할 수 있나? 나는 못한다.

“처음처럼과 참이슬의 맛을 구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술꾼”이라는 농담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제품 간 미묘한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런 표현이 통용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일반 소비자가 구별하기 힘들 만큼 제품 간 차이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위스키 내에서도 블렌디드니, 싱글몰트니 구분하는 건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통용되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위스키’라는 하나의 상품으로 이해가 될 뿐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류 업계 내에서도 위스키는 오랫동안 활발한 마케팅의 대상이었다. 개인적으로 위스키 시장의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 중 하나는 숙성 연도에 따른 고급화 전략이라고 본다. 물론 장기 숙성에 따른 비용 증가가 가격 상승의 합리적 근거가 되지만, ‘숙성 기간이 길수록 맛이 좋아진다’는 통념까지 함께 따라오는 건 혹시 마케팅에 속은 건 아닌지 위스키 애호가라면 비판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숙성될수록 좋다’라고 단순히 믿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유명해지는 대만, 일본, 인도 위스키들은 왜 숙성연도 없는 NAS 제품이 많은지…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스키의 숙성 과정에 대해 조금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도 전문가는 아니다 ㅎㅎ )


그래서 숙성 과정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1. 알코올의 부드러워짐
  • 일단 오크통에 들어가는 주정은 당연하겠지만 그냥 생 알코올이다. 증류소 투어에 가서 이 주정을 마셔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각 증류소마다의 특징이 분명 있지만 여전히 거친 느낌의 알코올일 뿐인데 이러한 거칠고 자극적인 알코올이 오크통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드러워진다. 이는 알코올 분자들이 날씨의 영향으로 서로 결합하거나 흩어지면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고 일부가 증발하기 때문인데, 결국 위스키와 같은 고도수에서 나오는 ‘화끈거림’이 줄어들고, 더 부드러운 질감을 갖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2. 나무에서 추출되는 향과 맛의 주입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이 줄어들고 팽창하면서 오크통이 술을 머금었다가 다시 배어내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무의 성분이 서서히 위스키에 녹아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주요 성분인 리그닌, 탄닌, 바닐린 등이 위스키의 맛을 만든다. 리그닌은 바닐라와 비슷한 향을, 탄닌은 드라이한 맛을, 바닐린은 바닐라의 달콤한 향을 만들어낸다. 위스키를 볼 때 오크통의 종류(아메리칸 오크, 유러피안 오크)와 토스팅 정도를 따지는 이유는 결국 위스키의 가장 큰 맛은 나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며, 바닐라 향이 강한 것도 그 이유다.

3. 불필요한 성분의 제거
  • 숙성 과정에서 일부 바람직하지 않은 성분들이 증발하거나 분해되는 현상도 있다. 예를 들어, 술을 증류할 때 함께 넘어온 일부 황 화합물들이 오크통에 들어갔다 나오는 과정을 통해 제거되면서 위스키의 품질이 향상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원주의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고 정제되는 효과가 있다.

4.복잡한 풍미의 발달

오크통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스키 내부에서도 다양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데 지금 우리가 맛보는 견과류나 건조 과일 같은 풍미가 이때 생겨난다. 보통은 알코올과 산이 반응하여 만들어내는 것으로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화학 반응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고 이 풍미는 좀 더 깊고 복잡해진다.


“뭐야 여기까지 보면 그냥 그럼 오래 숙성하는게 좋은거잖아?.” 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으나, 아무리 좋은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 ‘과유불급’ 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생각해보자.

과도한 숙성의 문제점

숙성을 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것이다. 애초에 위스키가 생겨난 계기가 오크통에 숨겨둔 스피릿을 꺼내 보니 맛있어졌던 것이 계기이니 숙성이 위스키의 맛을 만들어내는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도한 숙성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1.과도한 나무맛

숙성이 길어지면 나무 향이 지나치게 강해져 다른 풍미가 완전히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오크통에서 나오는 탄닌과 리그닌의 과도한 흡수다. 탄닌은 떫은맛을 내는 성분으로, 적당량일 때는 위스키에 깊이와 복잡성을 더해주지만 과도하면 지나치게 쓰고 건조한 맛을 낸다. 또한 리그닌은 나무의 주요 구성 성분 중 하나로, 위스키에 특유의 ‘나무’ 향을 부여하는데, 이게 너무 깊어지면 바닐라 향이 아닌 나무 향만 강해지는 경향이 발생한다.

과도한 나무 향은 각 증류소마다 자랑하는 독특한 과실 향이 사라지게 만든다. 위스키 노트를 보면 사과, 배, 감귤류 등의 상쾌하고 달콤한 향을 강조하는 위스키들이 있는데, 이 위스키들을 더 숙성하면 이 독특한 과실 향이 사라진다. 또한, 위스키의 원료가 되는 곡물(보리, 밀, 옥수수 등)에서 오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도 나무 향에 묻혀 감지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오래 숙성된 위스키는 복잡하고 다양한 풍미를 잃고, 단순히 강렬한 나무 맛만 남는다. 이는 마치 요리에서 한 가지 향신료를 과도하게 사용해 다른 모든 재료의 맛을 가려버리는 것과 비슷한데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끔 ‘오버우디드(over-wooded)’ 라는 표현을 쓰는게 바로 이런것 때문이다.

2.과도한 부드러움과 개성의 문제

블렌디드 위스키가 부드러움을 추구한다면 그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만, 과도한 숙성으로 인해 싱글몰트가 과도하게 부드러워져서 자신의 개성을 잃는다면 애매해진다. 특히 위스키는 각 지역의 곡물과 물, 그리고 자연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개성 있는 맛이 생겨나야 하는데, 과도한 숙성으로 인해 일부 성분들이 서로 반응하며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가져야 할 생동감 있고 다채로운 맛이 없어지는 경향이 발생한다.

3. 줄어드는 양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되는 동안 자연적으로 증발하는 현상을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이 증발은 주로 알코올과 수분에서 발생하며,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증발되는 양도 많아진다. 10년 이상 숙성된 위스키의 경우 천사의 몫으로 사라진 양이 전체의 20~30%에 달하기도 한다. 20년 이상이면 어느 정도가 사라질까? 오랜 기간 숙성할수록 남아있는 위스키의 양은 줄어들고,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그만큼 가격만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최근 NAS 제품이 많아지는 이유

최근 일본, 인도, 대만 등에서 새롭게 나오는 위스키들은 연도 표기가 없는 NAS 제품이 많다. 그 이유로는 싱글몰트의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거나, 아직은 젊은 증류소들이라 12년 이상의 싱글몰트 제품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고 그 시각에도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연도 수에 따른 구분법이 그들에게는 족쇄이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연도 수가 명확하게 잘 나오는 제품들은 스카치 위스키들이 대부분인데, 해당 지역에서는 12년, 14년, 16년이 최적의 숙성기간일 수 있지만, 더 덥고 습한 기후를 가진 국가들에서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나 대만과 같은 아열대 기후에서는 위스키의 숙성 과정이 스코틀랜드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이는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 증발 속도가 빨라지고, 오크통과 위스키의 상호작용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즉 오크통이 더 빠르게 술을 흡수했다가 내뱉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지역에서는 3-5년 정도의 숙성으로도 스코틀랜드의 12년산과 비슷한 복잡성과 깊이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미 과도하게 마케팅화된 연도 수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분명 4~5년만 숙성했을 때 가장 좋은 맛을 낼 수 있는데 긴 연도 수의 위스키가 더 좋은 위스키라는 통념으로 4years의 라벨로는 위스키를 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NAS 제품은 새로운 위스키 생산국들에게 당연한 방법이 된다. 연도 표기 없이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기후와 환경에 가장 적합한 숙성 기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비자들에게 연도가 아닌 실제 맛과 품질로 위스키를 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실제로 NAS 제품인 대만의 카발란, 히비키, 후지 등의 위스키를 마셔보면 알 것이다. 딱히 맛이나 향의 복잡성이 떨어지던가? 내 입맛에는 아니던데?


결국에는 자신의 취향을 아는것이 중요하다

결국엔 자기 입맛에 맞는 걸 찾는 게 핵심이다. 누군가는 3년 숙성된 생동감 있는 위스키를 좋아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18년 숙성돼 깊고 복잡한 맛이 나는 걸 선호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다양한 위스키를 경험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숙성 연도나 브랜드에 현혹되지 말고 직접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맛은 매우 주관적이며, 개인의 취향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취향을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스키 전문가들이 아무리 칭찬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건 나에게 좋은 위스키가 아니다. 25년이든 30년이든 숙성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3~4년 짧게 숙성되고 평론가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위스키라도 내가 좋아한다면 그게 바로 내 인생 위스키가 되는 것이다.

결국 위스키를 즐기는 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마시면서 ‘이거 맛있네’라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위스키에 대해 공부하고 숙성 연도에 따른 맛의 차이와 각 지역별, 재료별 특성을 깊이 파고드는 것도 위스키를 즐기는 데 있어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는 필수가 아니다.

따라서 위스키를 고를 때 연도에 얽매여 고민하지 말자. 12년산 발베니가 25년산 맥캘란보다 맛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짓지 말자. 위스키는 편안하게 마시면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면 된다. 결국 술은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