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알라키 12년 (GlenAllachie 12 Years Old)

글렌알라키는 처음 CS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한창 빌리워커가 인수하고 나서 나온 CS batch 3, 4, 5 중에서 5를 맛보았을 때 ‘셰리 맛이 가득하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다. 물론 이제 오래돼서 정확한 맛이 기억나는 건 아니다.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이렇게 요즘에는 가능하면 위스키를 마시고 노트를 쓴다)

아는 친구와 위스키를 한잔 마시기로 하여 어떤 위스키를 사갈까 하다 이 위스키를 골랐다. 비싸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저렴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맛이 보장된 위스키를 고르려면 맛으로 보장된 브랜드를 고르는 것이 좋은데, 글렌알라키가 딱 그 브랜드에 맞다.

많은 위스키는 처음 뚜껑을 따고 난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맛이 조금씩 달라지고 부드러워진다(에어링이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위스키들을 마실 때는 처음 마셨을 때, 그리고 중간에 마셨을 때, 마지막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시는 게 조금씩 다른 것도 큰 재미이긴 하다. 아쉽게도 이번 글렌알라키 12년은 그날 바로 열어서 친구와 한 병을 다 마셨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으나, 굳이 에어링을 할 필요 없이 부드럽고 좋은 맛이었다. 서로 계속해서 “맛있다”라고 마셨으니까.

첫 향은 과일향이 훅 들어온다. 사과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특유의 꿀향도 부드럽게 있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 팡팡 터지는 향은 아니고 보통의 엔트리 싱글몰트에서 느껴지는 향이었다. 물론 맛도 그렇고. 생각보다 오일리함이 강했는데 향에서는 느껴지지 않던 나무맛이 그 오일리함을 잡아주는 듯했다. 밸런스가 좀 괜찮다고 할까?

물론 가격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할 만하다. 10만 원에 샀는데 그 정도 가격인가? 라고 하면 조금은 아쉽다. 물론 위스키 취향이야 천차만별이니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럽겠지만, 이 가격대에는 너무나도 좋은 위스키가 많다. 특히 자신의 특징을 뿜어내는 위스키들이 많은 가격대이기 때문에 조금은 가성비 면에서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최종평

빌리워커가 인수한 이후로 이름값이 올라간 글렌알라키. 나도 그전에는 마셔본 적도 없는 위스키이고, 내가 있는 지역까지 수입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이제 나름 그 맛과 평판이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브랜드 빨로 가격대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그만한 가치는 한다. 일단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균형 잡힌 맛이 인상적이다. 달달하면서도 과일의 풍미가 적절히 어우러지고, 과하지 않은 깊이감이 좋다. 특히 부담 없는 바디감 덕분에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다음에도 애매하게 누군가와 마실 때,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면 이 위스키를 고르지 않을까? 특히 음식과 함께 먹는다면 더욱 그렇다. 무난하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실패 확률이 적은 안전한 선택이 될 것 같다. 데일리 위스키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