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누구나 첫 기네스를 기억한다.

2010년 겨울쯤 이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당시에는 카톡 대신 페이스북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대화를 하였는데,(이게 어린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뉴스도 봤다. 물론 컴퓨터가 아닌 핸드폰이겠지만..) 습관처럼 켜두었던 컴퓨터 화면에서 메세지 소리가 들렸다. 

“용, 오늘 뭐해?” 

정훈이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특이하게도 성당에서 만난 그 친구는 당시에는 그냥 평범했던 학생이었지만 10년이 지나 지금은 미국에서 신부님이 되어있다. 사람의 인생이란건 지나가버린 바람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이다. 나도 10년 뒤의 내가 사업을 하겠다고 이렇게 구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술을 마시자는 약속이였다. 당시에 우리는 무슨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아무 약속 없이 만나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20대 초반의 남자 둘이 술을 마시며 많이 하는 이야기는 대부분 여자와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우리 둘은 연애 경험도 없었는데 그 주제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이해는 가지 않는다.

정훈이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사는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놀러와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날은 동네의 다운타운으로 가보기로 했다. 

“너네 집에서 먹는건 지겨워”라는 것이 녀석의 이유였다,

“갈만한 곳이 있나?”

나의 질문에 정훈이는 이미 결정한 곳이 있다며 나에게 지도를 보냈다. 

“지난번에 지나가다가 본 곳이 있는데 지하에 있는 펍(pub) 같아. 아처스?라는 곳이었는데”

(구글맵에 찾아보니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정하고 나는 시간에 맞춰 차를 끌고 다운타운에 도착해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의 스마트폰의 속도는 처참했기 때문에 구글맵을 보며 찾기보다는 대충 위치를 알고난 뒤에는 가게 간판으로 장소를 찾았다. 친구가 알려준건 “지하에 있는 펍인 것 같아”. 라는 단서 하나였기에 그 감각을 의지하여 찾았는데 아처스라는 가게는 도로변에 있었지만 간판이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딱 하나만 있었기 때문에 생각없이 지나가면 놓치기 쉬운 가게였다. 

하여튼 그렇게 펍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 가게문을 여니 정훈이는 이미 와있었다.  가게는 전형적인 미국식 펍으로 긴 카운터가 가운데 있고 뒤에는 여러 술잔들과 위스키, 맥주 메뉴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었다.

당시 우리는 술의 종류나 맛을 잘 몰랐다. 

21살의 나에게 술이란 소주, 맥주, 와인 그리고 양주 이 네 가지로만 구분되었고 그나마 가장 많이 마시는 종류인 맥주라 해도 한 두개의 브랜드만 알았다. 

“난 기네스”

메뉴판을 보다 기네스에 별표가 있는 것을 보고 기네스를 골랐다. 물론 당시에는 기네스가 무슨 술인지 몰랐다. 그냥 별표가 있어서 시켰지… 당시 내가 주로 마시던 맥주는 블루문이었는데 그것도 뭘 알고 마신건 아니었다. 그냥 일반 맥주랑은 좀 다르네? 라는게 좋았을 뿐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인이 들고 온 맥주는 기존의 맥주잔과 다른 Guiness라는 로고가 적혀있는 멋진 유리잔에 거품이 흘러내리는 흑색의 맥주였다. 아 기네스가 흑맥주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춤추는 듯 흐르는 기네스의 거품이 신기한 문양을 만들어 내는 것을 친구와 함께 빨려 들어가듯 한참 쳐다봤다.  “흑맥주를 원래 좋아했어?” 라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나는 기네스가 흑맥주 인지도 몰랐어 라고 대답해 주었다.

10년도 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난 이때 처음 맛본 기네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부드러운 거품과 케익을 먹는듯한 부드러운 맛. 맥주에 이런 맛이 있다니! 알콜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의 나에게 맥주라는 음료는 이게 알콜이다! 라고 입안에서 소리지르는 음료였다. 하지만 그날 마셨던 기네스는 알콜맛이 아닌 초콜릿 맛이 났다. “이봐 나는 알콜 따위를 위한 맥주가 아니야”.라고 점잖은 신사가 나에게 말하는 듯 부드럽고 우아한 맛이었다.

그렇게 기네스를 한 세 잔쯤 마셨던 것 같다. 이거 맛있다 라고 연달아 이야기하며 계속 시켰던 게 기억난다. 친구도 한두 번 마셔보더니 맛있다고 덩달아 기네스만 시켜서 마셨다.


그러고 보니 펍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위에 이야기 했듯 당시 나와 친구의 주된 관심사는 연애였다. 둘 다 연애를 못해봤으니 연애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마음에 좋아하는 사람도 둘 다 있었지만 겁쟁이처럼 표현도 못하고 있었던 20대 초반의 남자들은 참 할 말도 많았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실제로 무슨 대화를 하였는지는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와 했던 약속, 새로운 펍을 찾았다는 친구의 말에 운전을 하고 다운타운까지 갔던 기억, 지하로 내려가 느낌 좋은 펍에서 몇 시간이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모든 과정은 기억나는데도 사실 이 모든 이벤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대화 내용은 단 한 구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기네스를 처음 먹었던 기억.. 그리고 세상에 이런 맛난 맥주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다.

난 요즘도 한국에서 사람들과 펍에 가면 꼭 한번 이 펍에 기네스 마크가 있는지 확인해 보곤 하는데 기네스 마크가 있는 술집이라면 꼭 기네스를 처음 시켜서 마셔본다.  처음 기네스를 마셨을 때의 맛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지만 당연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날의 맛을 되찾아 본적은 없다.

그래서 가끔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기네스를 처음 먹었던 때의 감동을 이야기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가끔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일화가 있다. 첫 기네스를 마셨을 때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리고 대부분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첫 기네스를 마셨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그들도 그 이후로는 그런 느낌의 기네스를 마셔보질 못했다. 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재미있는 건 그들도 나처럼 기네스를 마셨던것은 잘 기억해도, 디테일을 잘 기억하진 못한다. 나와 내 친구의 대화처럼.


나의 첫 맥주는 라거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특히 카스와 하이트 같은 일본식 라거의 맥주 브랜드가 점령하고 있는 한국에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주야장천 라거만 마시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에게 첫 접하는 흑맥주는 보통 기네스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최근에는 여러 맥주 양조자들이 다양한 흑맥주들을 여러 술집으로 납품하지만 적어도 내가 대학생일 시절 흑맥주는 기네스 아니면 코젤이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도 그랬다.

거품은 버려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라거의 세상에서 살던 초보 알콜러들이 거품이 맛의 주요 포인트로 작용하는 스타우트로 넘어가며 기네스를 마셨다. 일반적인 이산화탄소도 아닌 질소를 통해 거품에 맛난 단백질을 담아두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기네스를 말이다. 당연한 문화 충격이다. 그리고 그 문화 충격은 우리의 기억에 흔적을 남기고 만다. “기네스는 맛있다” 라고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좋았던 첫 기억이 있다. 재즈, 컴퓨터 게임, 위스키, 영화 등 내가 현재 좋아하는 모든 것들은 그 경험의 첫 시작이 좋았다. 그렇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다시한번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좋았던 기억들이 정말 그 ‘한가지’ 떄문에 좋았던 것일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그 ‘맛’ 때문에 좋았던 것이라면 그 이후에도 그런 ‘맛’은 오랫동안 남아야 한다. 물론 익숙해지면 아무리 충격적인 맛이라도 결국에는 무뎌지겠지만 적어도 몇년은 더 갈텐데 나에게 기네스는 그떄 이후로 그정도의 충격을 주었던 적은 없다.

그냥 첫경험 때문이었을까? 글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 – 재즈, 게임, 위스키, 그리고 기네스를 돌아보니 깨닭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이나 게임, 맛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그 완벽한 첫 순간들이 중요했다. 어두운 바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 동료가 재즈를 소개해줬던 밤, 게임기 앞에 모여 웃음꽃을 피웠던 친구들,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해준 친절한 바텐더까지.

그리고 지금은 대양 건너 신부가 된 친구와 함께 첫 기네스를 마셨던 그 겨울밤. 지하 펍에 앉아 아무 말이나 나누던 우리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꿈을 가진 청년이었다. 맥주는 완벽했지만, 그건 함께 있었기에 완벽했었기도 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그 첫 맛을 다시 느낄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 같은 술을 주문하고, 비슷한 펍에 앉아, 같은 대화를 떠올려봐도 소용없다. 그 순간의 사람들, 그들의 희망과 불안과 웃음이 없다면 – 우리는 결코 그 첫 기네스를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 아닐까. 결국 잔 속의 술이 아니라, 테이블 너머에서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기억들이 더욱 특별한 것일지도? 완벽한 한 잔의 기네스든, 재즈 선율이든, 어린 시절의 게임이든 – 그것들은 결국 더 소중한 무언가를 담는 그릇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니 말이다. 바로 우리가 그것을 함께 나누기로 선택한 사람들 말이다.